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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 선조들은 한자와 여러 기록 방식을 이용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문자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한글이 없던 시대,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문자·편지·기록·거래로 살펴본 한글 이전의 한국

오늘날 우리는 글을 쓰는 일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가족에게 “늦게 들어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 먹어”라는 메모를 붙이고, 장을 보러 가기 전에 필요한 물건을 적어 둡니다. 돈을 빌려주면 금액과 날짜를 기록하고, 특별한 일이 있으면 일기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기록을 위해 특별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한글의 기본 원리를 배우면 처음 보는 단어라도 소리를 문자로 옮길 수 있습니다. 사람 이름, 지역 이름, 새로 생긴 외래어, 심지어 의미 없는 소리까지 상당히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이 없던 시대인 시간을 수백 년, 천 년 전으로 돌려 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한반도에 문자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자가 사용되었고, 한자를 이용해 한국어를 표현하려는 이두·향찰·구결 같은 방법도 발전했습니다. 국가에는 문서를 작성하는 관리가 있었고 역사서와 불경, 비문, 외교문서도 존재했습니다.

문제는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말을 자신의 언어 그대로 쉽게 적을 수 있는 문자 체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먼저 주무세요.”

“올해 농사가 잘되었습니다.”

“쌀 두 말을 빌려주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린 학생도 적을 수 있는 문장입니다. 그러나 한글이 없었던 시대에는 이런 일상의 말을 글로 남기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글이 없던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요?

한글 이전 한국의 문자생활과 한자·이두·향찰·구결의 사용 모습을 설명하는 이미지

먼저 한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글이 없었다”와 “문자가 없었다”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한글 창제 이전의 한국에서도 한자는 오랫동안 사용되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에서도 한자를 이용한 기록이 이루어졌고,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한문은 국가 행정과 학문, 외교, 역사 기록의 핵심적인 문자 수단이 되었습니다.

즉, 고대와 중세의 한국이 기록 자체가 불가능했던 사회였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한국어와 중국어가 서로 다른 언어라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어 화자가 “나는 오늘 시장에 간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을 당시 중국어 문장으로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순과 문법 체계가 다르고 조사와 어미처럼 한국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를 한자로 표현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한자를 안다고 해서 한국어를 그대로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한자를 이용하면서도 한국어를 표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두, 향찰, 구결입니다.

이두·향찰·구결은 왜 만들어졌을까?

한글 창제 이전 한자를 활용해 한국어를 표현했던 이두·향찰·구결의 특징과 사용 방법을 설명하는 이미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를 받아들이자 곧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한자로 중국어식 문장을 작성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적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 한국어를 표현하는 방법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두는 한자를 이용하여 한국어의 문법 요소와 표현을 기록하는 데 활용되었으며 특히 행정 실무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향찰 역시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해 한국어를 표기한 방법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향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구결은 한문을 한국어식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자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자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자를 몇십 개 익히는 것과 수많은 한자를 배우고 다시 그것을 한국어 표현에 맞게 활용하는 것은 난이도가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이러한 표기법이 존재했다고 해서 모든 백성이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평민들은 정말 글을 전혀 쓰지 못했을까?

한글 이전 시대 평민들의 문자 사용과 구전·기억·표식·대필 등 기록 방법을 설명하는 이미지

여기에서는 지나친 단순화를 피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평민은 모두 문맹이었다”거나 “한글 이전에는 양반만 글을 알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지역, 직업, 신분에 따라 문자 능력은 달랐을 것입니다. 상업이나 행정 업무와 접촉하는 사람, 사찰과 관계된 사람, 지역 사회에서 문서 작성이 필요한 사람 등은 일정 수준의 한자나 문자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양반’이라는 신분 개념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조선시대의 신분 구조를 훨씬 이전 시대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남습니다.

오늘날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모국어를 쉽게 문자로 옮길 수 있는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는 것과 글을 작성하는 것도 다른 능력입니다.

특정 한자의 의미를 몇 개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긴 문장으로 기록하고 편지를 작성하거나 계약 내용을 문서화하는 것은 훨씬 높은 수준의 문자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문자생활의 혜택은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면 가족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했을까?

한글 이전 시대 사람들이 말 전달, 대필, 상징과 물건을 이용해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이미지

오늘날에는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문자 메시지 하나면 됩니다.

그러나 문자 사용이 제한적이었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누군가 다른 마을로 간다면 그 사람에게 말을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에게 어머니가 잘 계신다고 전해 주시오.”

“올해 추수하고 나면 찾아가겠다고 말해 주시오.”

이렇게 말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내용이라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 편지를 작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받은 문서를 읽을 수 없다면 글을 아는 사람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즉, 문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문자 사용에 중개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생각을 글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려야 했습니다.

글을 쓰기 어렵다면 기억은 어떻게 보존했을까?

문자 사용이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이야기와 노래, 기억, 표식, 의식과 풍습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후대에 전달하는 모습

문자가 널리 사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기억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한 정보 저장 수단이 됩니다.

가족의 역사,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농사 방법, 음식 만드는 방법, 노래, 이야기, 풍습 등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됩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구전이라고 합니다.

민요, 설화, 전설, 민담 등은 이러한 구전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다음 사람이 다시 전달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분은 빠지고, 어떤 부분은 강조되며,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기록은 사람의 기억을 외부에 저장하지만 구전은 사람이 기억 자체를 가지고 이동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록 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사이에는 정보 보존 방식에서 큰 차이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거래는 어떻게 했을까?

한글 이전 시대 사람들이 구두 약속과 증인, 표식, 기록을 이용해 곡식과 물건, 토지 등을 거래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이미지

문자가 제한적이었다고 해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팔고, 토지를 거래하고, 세금을 내고, 돈이나 곡식을 빌렸습니다.

간단한 거래는 당사자들의 기억과 신뢰,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지난달에 쌀 두 말을 빌려주었다.”

“수확이 끝나면 갚기로 했다.”

작은 공동체에서는 서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산이나 토지처럼 중요한 거래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국가 행정과 관련된 기록이나 중요한 계약에는 문서가 필요했고, 문서를 작성할 능력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단순한 교양을 넘어 경제활동에서 매우 강력한 능력이었을 것입니다.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과 읽지 못하는 사람은 계약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능력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숫자는 어떻게 세었을까?

한글 이전 시대 사람들이 손가락, 돌, 나무 조각, 표식과 한자 숫자를 이용해 수량을 세고 계산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이미지

글자를 모른다고 숫자를 셀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문자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수량을 인식했습니다.

가축이 몇 마리인지, 곡식이 얼마나 있는지, 가족이 몇 명인지, 며칠이 지났는지를 파악해야 생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할 수도 있고 돌이나 나무 조각 같은 물체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한 표시를 남겨 수량을 나타내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또한 당시 사회에는 한자를 이용한 숫자 표현과 계산 방법이 존재했고 행정과 상업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계산 능력도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한글이 없었으므로 숫자를 세지 못했다”가 아니라, “숫자를 세고 계산할 수 있었지만 평범한 사람이 그 결과를 자신의 언어로 자유롭게 기록하기는 어려웠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옛 한국에서 왕과 지배층의 기록에 비해 농민과 가족 등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가 기록으로 남기 어려웠음을 표현한 이미지

한글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며 특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왕과 국가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지만 평범한 사람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왕이 몇 년에 즉위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와 전쟁했는지, 어떤 제도를 시행했는지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농부 한 사람의 하루는 어땠을까요?

전쟁에 나간 병사는 무엇을 두려워했을까요?

아이를 키우던 어머니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장터의 상인은 무엇을 팔았고 하루에 얼마를 벌었을까요?

젊은 남녀는 어떤 사랑을 했으며 부모와 자식은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요?

이런 이야기는 국가의 공식 기록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만약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와 종이, 그리고 기록을 보존할 환경이 널리 갖추어져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사는 훨씬 더 풍부했을지도 모릅니다.

을지문덕과 안시성의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더 알고 있었다면

을지문덕과 안시성 전투 당시 장군과 병사,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이 더 많이 남았다면 알 수 있었을 역사적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고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유명한 사건인데도 정작 인물에 대한 정보가 놀라울 정도로 적은 경우가 있습니다.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의 생애 전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제한적입니다.

안시성 전투 역시 고구려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건이지만 안시성주가 정확히 누구였는지를 둘러싼 문제처럼 오늘날까지 확실하게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 병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쉽게 기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오늘 수나라 군대가 보였다.”

“우리 장군이 병사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투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런 기록이 수백, 수천 개 남았다면 우리는 당시의 전쟁을 왕과 장군의 관점뿐 아니라 병사의 눈으로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기록 부족의 원인을 문자 문제 하나로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에는 종이와 필기구 자체가 귀했고 전쟁과 화재, 왕조 교체, 자연재해 등을 거치며 기록이 소실될 가능성도 컸습니다. 기록이 작성되었더라도 천 년 이상 보존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따라서 “문자가 있었다면 을지문덕에 관한 기록이 반드시 남았을 것이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글을 쓸 수 있었다면 기록의 절대적인 양이 증가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문자생활이 쉬웠을까?

한글 창제 이전 중국과 한국의 문자 사용 환경과 평민의 문자생활 차이를 비교한 이미지

중국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차이가 있습니다.

한자는 중국어를 기록하기 위해 발전한 문자 체계입니다. 따라서 중국어 화자에게 한자는 자신의 언어를 기록하는 문자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한자를 받아들였지만 한국어와 중국어의 문법과 어휘 체계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자를 배우는 것에 더해 한문이라는 별도의 문어 체계를 익혀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옛 중국의 일반 백성 대부분이 글을 자유롭게 읽고 썼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한자 자체를 익히는 데 상당한 교육이 필요했으며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교육의 기회는 오늘날처럼 보편적이지 않았습니다.

즉 중국인에게도 문맹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차이는 중국어와 한자의 관계와 한국어와 한자의 관계가 같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땠을까?

일본이 한자를 받아들인 뒤 만요가나와 히라가나·가타카나를 발전시키고 문자 사용을 확대해 간 과정을 설명하는 이미지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일본 역시 처음부터 오늘날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도 한자를 받아들였고, 한자를 일본어에 맞추어 사용하는 과정에서 가나 문자가 발전했습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대체로 9세기 무렵에 형태가 정착해 갔습니다.

가나는 일본어의 음절을 비교적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기록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어 문장을 한자 없이 히라가나만으로 적는 것도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현대 일본어에서는 한자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읽기 편하고 의미도 명확하지만, 발음을 기록한다는 측면에서는 가나만으로도 일본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 한국과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가나가 존재했다고 해서 중세 일본의 모든 평민이 히라가나를 읽고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닙니다. 문자 존재와 보편적 문해력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에는 문자가 있었으므로 모든 평민이 편지를 썼고 한국 평민만 글을 쓰지 못했다”고 비교하면 지나친 단순화가 됩니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각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모국어를 글로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큰 교육적 장벽을 넘어야 했는가?”

이렇게 바라보면 한글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1443년,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지다

1443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한글의 창제 배경, 원리, 새로운 글자 체계를 설명하는 이미지

조선 제4대 왕 세종은 1443년 새로운 문자를 창제했습니다.

그리고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를 만든 이유는 훈민정음 서문에 매우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글을 모르는 백성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을 문제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오늘날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든 목적이 단순히 왕실이나 지식인의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문자생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글의 위대한 점은 글자 수가 적다는 것만이 아니다

한글의 과학적 원리와 쉬운 학습, 뛰어난 조합성과 표현력, 현대 디지털 환경에서의 활용을 설명하는 이미지

한글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흔히 “배우기 쉽다”고 말합니다.

물론 매우 중요한 장점입니다.

그러나 한글의 진정한 힘은 단순히 글자의 개수가 적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수많은 음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ㄱ, ㄴ, ㄷ과 같은 자음과 ㅏ, ㅓ, ㅗ와 같은 모음을 익히면 이들을 조합해 처음 보는 말도 문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가령 새로운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해도 발음을 들은 뒤 글자로 옮길 수 있습니다.

“두근두근”, “쿵”, “쾅”, “졸졸”, “바스락바스락”처럼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외국어에서 들어온 새로운 단어도 한글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한글은 이미 존재하는 단어를 하나씩 외워서 적는 방식이 아니라 기본 요소를 조합하여 새로운 표현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문자 체계입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한글이 생겼다고 다음 날 모든 백성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교육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한글이 백성들에게 점진적으로 확산된 과정을 설명하는 이미지

여기에서도 역사적 현실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고 해서 다음 날부터 조선의 모든 백성이 한글을 읽고 쓰게 된 것은 아닙니다.

기존 지식인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한문이 중요한 지위를 유지했고 국가 행정과 학문에서도 한자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교육 기회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가 하나 생겼습니다.

한국어를 한국어 그대로 비교적 쉽게 기록할 수 있는 문자 체계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글은 편지, 문학, 생활 기록 등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한글 사용과 한글 편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기록하기 어려웠던 목소리가 문자라는 형태를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자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확장하는 기술이다

구전에서 문자와 책, 인쇄술, 디지털 기록으로 발전하며 인간의 기억과 지식이 확장되는 과정을 표현한 이미지

문자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자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문자는 인간의 기억을 몸 밖으로 꺼내 놓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생각한 것을 종이에 적어 두면 내일의 내가 읽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기록한 것을 아들이 읽을 수 있고, 그 기록을 손자가 읽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수백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남긴 글을 오늘날의 우리가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죽지만 기록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문자가 인류 문명에서 중요한 이유입니다.

법률, 역사, 과학, 철학, 종교, 문학, 계약, 회계 등 복잡한 문명은 기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한글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훈민정음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까지 이어지는 한글의 역사와 일상 속 가치, 기록과 소통의 중요성을 표현한 이미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한글을 봅니다.

스마트폰 메시지를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회사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식당 메뉴판을 보고, 도로 표지판을 읽습니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이것을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잠시 한글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면 그 가치가 달라 보입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에 적고 싶은데 적을 방법이 없다면 어떨까요?

멀리 있는 가족에게 자신의 말을 직접 편지로 전하기 어렵다면 어떨까요?

장사를 하면서 거래 내용을 자유롭게 기록하기 어렵다면 어떨까요?

자신이 경험한 중요한 사건을 후손에게 남기고 싶은데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문자 체계가 없다면 어떨까요?

문자를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종대왕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백성을 위한 뜻, 한글이 교육·소통·문화·현대 생활에 미친 영향을 표현한 이미지

우리는 세종대왕을 역사책에서 배우고 한글날이 되면 훈민정음의 가치를 다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한글의 가치는 한글날 하루에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것 자체가 한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검색창에 궁금한 것을 입력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 자녀에게 편지를 남기는 것, 일기를 쓰는 것 모두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의 혜택을 받고 있는 일입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한글의 활용 범위가 세종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되었습니다.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15세기에 문자를 만들었지만, 그 문자는 21세기의 스마트폰 화면과 컴퓨터 키보드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문자가 수백 년 뒤 수천만 명의 사람이 매일 사용하는 정보 전달 체계가 되었습니다.

한글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그 위대함을 잊기 쉽다

일상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세종대왕, 훈민정음을 함께 보여주며 한글의 가치와 위대함을 표현한 이미지

한글이 없던 시대의 우리 선조들이 아무런 문자도 없이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한자를 사용했고, 이두·향찰·구결 같은 독창적인 방법을 만들어 한국어를 기록하려 했습니다. 국가와 지식인들은 수많은 문서를 남겼으며, 그 기록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고대와 중세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어를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은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훈민정음의 창제는 단순히 새로운 글자 몇 개가 추가된 사건이 아닙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기록할 수 있는 훨씬 접근하기 쉬운 수단이 만들어진 사건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자연스럽게 글을 씁니다.

“잘 다녀오세요.”

“밥 먹고 가세요.”

“사랑합니다.”

“오늘 정말 힘들었습니다.”

누구나 몇 초 만에 적을 수 있는 짧은 문장입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문장을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쉽게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긴 역사의 관점에서는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누리지 못했던 문자생활을 우리는 매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사용하면서 가끔은 그 문자를 만들어 준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사람들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글은 과거의 문화유산인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 도구이며, 생각을 기록하고 지식을 축적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게 해 주는 소중한 문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남긴 한 줄의 글도 언젠가는 미래의 누군가에게 이 시대를 보여 주는 작은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 한글과 훈민정음 관련 자료 더 알아보기

한글의 역사와 훈민정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아래의 공식 기관 자료를 참고해 보세요.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말과 한글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으며, UNESCO에서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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